퇴근시간만 기다렸다.
시동을 켜고 달려본다. 과속은 금물. 규정속도를 지키며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함평군 나산면이다.
예전에 캠핑하러 자주 다니던 앵두공원이 있는 나산면.
이곳에 임야가 경매로 나왔다.
전날 이 물건을 공부하느라 늦게까지 잠을 못잤다. 작은 계곡이 흐르고 현황 맹지지만 지적도상 길도 있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경사도뿐.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컴퓨터 모니터로 원하는 토지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경매에 어떤 물건이 올라오는지, 어떻게 생긴 건지 로드뷰를 통해 쉽게 접하고
카카오맵으로 하늘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경매 경험이 전무한 나도 어느정도 쓸만한 땅과 그렇지 못한 땅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경매사이트 물건확인->카카오맵->임업정보 다드림->토지이음->브이월드
이제 찾은 물건은 이 과정만 세 번 정도 반복했던 것 같다.
첫째는 나무 수령이 30년 이상이라서. 둘째는 율폐도가 70이 넘어서다.
집 근처에는 이런 산이 없다. 대부분 10년 미만의 소나무들이 산을 푸르게 덮고 있다. 있다해도 너무 비싸다.
도시의 불빛과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질 때 임야의 가격은 내가 안심할 정도가 된다.
여름에 임야를 임장하러 간 게 잘못일까? 허리만큼 풀이 찼다.
차가 다녔던 길은 확실한데
지금은 확실히 차가 못 간다.
잠시 고민하다 풀을 헤쳐나간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깝다. 실물을 눈으로 보고야 만다.
길이 거의 끝났을 무렵 해당 토지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수많은 거미줄을 끊어내고 풀씨를 주렁주렁 몸에 달았다.
산은 웅장했다. 키가 큰 나무들이 오랜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로 바라보는 산이 협곡을 만드는 곳. 그 골짜기로 계곡물을 토해내는 곳.
도시의 소음과 불빛이 감히 기웃거리지 못할만큼 하늘이 맑은 곳이다.
상상대로다.
그런데 이 산은 반전매력이 있다. 그 오랜 세월 인간의 억척스러운 욕심을 이겨낸 이유이기도 하겠다.
그 자태가 곧다. 누운 게 아니라 일어설 참이다.
가끔 손을 동원해야 오를 수 있게 도도하게 섰다. 경사도가 다드림 사이트에서 본 것처럼 심한 땅이었다.
조림도 잘 되어있고 두껍고 큰 나무들이 빼곡했다.
여름철 이런 나무 밑에서 살랑이는 바람 한 점 맞으면 기분이 정말 좋겠다.
그런데 사람이 해 먹을 게 없는 산이다.
인간 욕심에 깎아내지 않고선 답이 안 나온다.
깍아내는 건 더 답이 안 나온다.
경사가 심한 임야는 깎아 길을 내면 낼 수록 뒷처리가 어렵다.
절개면이 크게 생기고야 만다. 비가 내리면 무너져버린다.
멀쩡한 산을 훼손하는 것도 내 취지랑은 안 맞다.
나무를 두고 차가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게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이 산에 차를 상상하니 울창한 숲의 절반은 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냥 너는 너대로 살아라. 난 널 만나 반가웠다.
집에 오니 운동화가 난리다. 산에서 풀씨를 잔뜩 달고 왔다.
니들, 여기서 살아볼 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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