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게 온 번아웃은 큰 쓰나미와도 같았다. 가까스로 지탱했던 의지와 다짐이 한순간 모두 무너져버린 경험이었다. 난 그 번아웃을 휴직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중이다. 번아웃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건 무조건 휴식이다.
자주 찾아오는 번아웃 증상. 그러나 이번엔 병적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야근1등이 아마 나였을 것이다. 일의 강도는 입사 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최고조에 있었지만 노예근성으로 이겨냈다. 난 책임감이 있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견인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랐고 내 머리는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구분 없이 이미 내린 결정들과 앞으로 내릴 결정들을 가상의 상황에서 쉼 없이 복기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어떤 대화도 건성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머릿속은 수많은 가능태를 연산하는 CPU처럼 되어버렸다.
머릿속의 이상함을 감지한 건 휴직을 결정하기 두어 달 전이었다. 그래도 주말조차 온종일 일에 과한 것만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족과의 대화도 한 귀로 흘리며 들었고 시뮬레이션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잤다. 매일이 피곤했다. 매순간 회사일로 살았다. 감정은 짜증과 화가 독차지한 상태가 됐다. 그렇다. 번아웃이었다.
쉬고 싶었지만 쉴 수 없었다. 살기 위해 강제로 퇴근을 했다. 내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운 건 9시였다. 9시가 넘지 않게 퇴근하자! 그러나 말이 쉽지 9시에 퇴근해도 여전히 머릿속은 회사일로 꽉 차 있었다. 다른 정보는 들어 올 틈이 없어 아이들 생일도 가물가물 한 상태가 되었다. 결국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과 결심이 들어섰다. 휴직을 신청했다. 5개월이다.
육아휴직으로 번아웃 증후군 치유하기.
휴직을 내는 건 큰 용기가 필요했다. 월급의 절반가량이 날라간다. 우리 가족을 지탱해주는 돈이 사라지는 것이다. 회사에 안 좋은 이미지로 비칠 것이며 복귀 후 승진과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휴식이 필요했다. 증기기관차처럼 앞만 보며 달려왔고 그 대부분은 시간은 회사를 위한 시간이었다. 젊음은 지고 중년이 되어버린 나를 위한 시간을 한 번은 줘야 될 때가 됐다고 느꼈다. 복귀 후 극복해야 할 일은 그때 극복하면 될 일이었다. 당장 살고 봐야 했다. 휴직을 하고 한 달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여전히 회사에선 이런저런 이유로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왔고 그 전화 한 통이 온종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월급은 못 받지만 혼자 일은 하는 이상한 상태가 되어버려 일을 하는 건지 쉬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시간들을 헤엄쳐 다녔다.
한 달이 지나자 회사에서 연락이 뜸했다. 일주일에 서너시간은 회사일을 안 하는 상태를 경험했다. 두 달이 지나자 회사 관련 일을 생각하는 날은 일주일 기준 하루 정도가 됐다.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집을 짓는 데 집중하고 글을 쓰고 읽는 데 썼다. 물론 육아휴직이니 아이들과 뭔가를 해보는 시간들도 가졌다. 그중 최근에 단행한 게 제주도 보름 살기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이 특히 좋았던 건 일과 관련된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은 오랜 시간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물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건 더 좋은 일이었다. 분명 '일'과의 별거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쉼이 필요한 상태는 어떻게 알지?
나만 이렇게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 직장인 절반 이상이 번아웃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한다. 혼자 특별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번아웃이 오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과중한 업무다. 내가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책임진다고 생각하는 데서 업무는 끌려온다. 마치 비 오는 날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이 부여되며 더 많은 책임이 몰려든다. 자신감은 부담감으로 변화하며 예전보다 짜증이 늘어나면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내가 그랬다. 술자리에서 논쟁하고 싶어 했으며 집에선 짜증으로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 불안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번아웃이 오면 주변사람도 힘들다. 부정적 감정을 받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번아웃 퇴사?? 그 전에 쉬어라.
번아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적게 일하거나 잠시 쉬거나. 인풋을 바꾸어야 한다. 이걸 친구와의 대화, 넷플릭스 등 아웃풋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본다. 그건 효과가 없다. 내 그릇을 더 키우는 것도 오답이다. 몰려드는 일을 더 잘하게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해봤자 일은 더 많아질 뿐이다. 비 오는 날 물이 덜 고이게 웅덩이를 줄여야 한다. 아니면 비가 안 오는 곳으로 잠시 떠나 있어야 번아웃은 해결된다. 내가 흠뻑 젖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걸 회사에게도 알려야 한다.
잠시 떠나보면 치유는 된다. 그러나 돌아가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 120% 가동했던 애씀을 줄여야 버틸 수 있다. 우수사원이라면 보통은 남들보다 더 애썼다는 뜻이다. 평균치로 회귀해도 된다. 그동안 애썼으니까. 에너지가 다시 가득 차면 RPM을 올리고 에너지가 고갈되면 천천히, 덜 달리면 된다. 회사에서 눈을 흘겨도 할 수 없다. 내가 흠뻑 젖으면 회사에도 득이 될 게 없다. RPM을 조금 늦추자. 앞만 보고 살더라도 가끔은 날 따라오는 그림자도 확인하며 나아가야 한다. 나의 삶에 '일'이 아닌 것들을 초대해보자. 미디어보다는 책을, 책보다는 즐거운 경험을 해보는 걸 추천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번아웃 증후군 극복 방법을 요약해본다.
1. 업무 스트레스는 짜증 그리고 화로 진화한다.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자.
2. 짜증은 발현되지 않은 내재 된 감정상태며 화는 표출된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내 상태를 알려준다.
3. 번아웃이라는 판단이 들면 일주일을 쉰다.
4. 쉬면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방법 대신 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5. 복귀 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한 달 이상을 쉰다.
6. 휴식기 중 4번 항목을 반복한다. 가능하면 업무와 관련된 연락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든다.
7. 복귀 후 변화된 게 없다면 변화를 만들어라. 불가능하다면 퇴사 및 이직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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