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출근하니 티비에서
“아빠 어디가"를 방영하고 있다.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내가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들이 속속 나와 채널을 돌리지 않고 계속 시청하게 됐다. 처음 나온 곳은 ‘대만' 이번 겨울에 대만을 갈까 고민중인터라 흥미롭게 보게 되었다. 캇이 바뀌고 안정환과 윤민수가 나오는 편이 이어졌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보던 곳인데?’ 캘거리 공항이다. 이들이 공항에서 차를 대여해 이동한 곳은 ‘밴프' 내가 10년 전 6개월 동안 살았던 그리운 곳이다. 화면이 지날수록 밴프의 아름다운 설경이 언제나 펼쳐질까 기대되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지난 추억을 반추하는 걸 뭐라고 할까? 어떤 이들은 TV에서 소개된 곳을 따라다닌다는데 난 미디어를 잘 안 접하는 사람이라 그런 건 못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우연히 어딘가에서 그곳을 보게되면 참 반갑다는 생각을 갖는 편이다. TV 속에서 안정환이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여는 순간 그때가 가장 기대됐다. '과연 저 사람은 캐나다 밴프의 설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까?'
내가 벤프를 가게된 건 전혀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있는 집 자식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던 친구들 패거리들이 하나 둘씩 연수를 떠나는 모습에 나도 따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돈을 모았다. 여비가 마련됐고 친구와 둘이 지구본을 돌려 손가락에 짚히는 곳 어디든 가자고 결심한게 현실 된 것이다.
우리는 벤쿠버에 첫 발을 디뎠다. 벤쿠버에 먼저 가있던 친구 집에서 이박 삼일을 머물려 캐나다 신고식을 치렀다. 그리곤 곧장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장장 12시간 동안 북부로 북부로 계속 달렸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벤프. 솔직히 버스에서 내리기 싫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라곤 산, 눈, 그리고 버스 터미널. 정말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의 당황하는 기색 속에는 나에 대한 원망도 숨어 있었다. 지구본을 돌리고 손가락으로 벤프를 찍은 건 내 손가락이었기 때문이다.
첫 날 우리가 머문 숙소는 '아빠 어디가'에서 윤민수와 그의 아들 윤호가 머문 바로 그 유스호스텔이다. 동네 끝자락에 붙어있던 바로 그 곳.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일층에선 TV에서 그랫던 것처럼 국적이 다양한 친구들이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음료를 마시며 어울리는 중이었다. 우리도 그들과 섞였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일본인 여자애의 우렁찬 코고는 소리에 놀라 밤새 잠을 설쳤던 기억만이 또렸하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1층에서 봤던 일본인의 여행일기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대단한 여행가로 히말라야에서 유럽, 미대륙 등 안 가본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니는 우리보다 한 두 살 연상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이런 기억들 때문일까? 외국을 여행하는 자들에게 특히 혼자라면 유스 호스텔을 찾아갈 것을 강력히 권한다. 안정환이 머물던 안락한 숙소보다는 윤민수가 머문 수많은 사람들과 살을 부비며 눈빛을 교환할 수 있는 유스 호스텔이 훨씬 많은 추억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캐나다에서 6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었던 건 학교를 등록했기 때문이었다. (장기 체류에는 일자리나 입학 증명서가 필요했다.) 캔모어라는 인근 도시에 있는 어학원 왕복차비만 하루에 12달러. 가난한 유학생에겐 그 돈이 너무 아까웠다. 우린 그 학교를 당장 때려쳤다. 내 기억으론 이주일이나 삼 주일 정도 다녔던 것 같다. 그 속엔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고 일본에서 온 친구도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벤프를 선택하며 주저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영어를 지독하게 배워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이런 곳이라면 절대로 한국사람이 있을리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스 호스텔을 벗어나 우리가 두 번째로 머문 곳은 한국 교포 집이었다. 우연히 편의점을 들렀다 만난 한국인 점장님이 소개해준 집이었다. 이틀을 잤으나 너무 비싼 숙박비 청구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성급히 나왔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주변 아파트를 렌탈 할 방법을 연구해야했고 믿기 힘든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아파트를 렌탈할 수 있었다. 이 아파트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무로 지은 3층짜리 건물로 아파트라고 하기 보다는 빌라에 가까운 건축물이었다. 윗층에서는 누가 사는지 매일매일 열리는 파티로 시끄러워 잠을 자기 힘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우리 아파트는 꽤나 인기가 좋았다. 스페인, 일본, 프랑스등지에서 온 친구들이 우리집에 모여서 파티를 연 적도 있었다. 그 때 우린 비빔 국수와 삼계탕을 내줬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유학 온 여학생도 셋이나 됐는데 그 중 한 녀석은 집이 멀다는 이유로 우리집에서 자주 묵어가곤 했다. 그친구는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쌀쌀맞게 군다는게 핑계거리였다. 사실은 우리집에서 우리가 해주는 밥을 먹고 우리집에 있는 TV를 마음대로 돌리고 코를 드렁드렁 굴면서 자는 게 목적이였는지 모른다. 우리 집에 장점은 두어가지 있었다. 밖과 바로 연결되는 거실창이 그것이었는데 여자 손님이 안방을차지하면 거실에서 아침해를 맞이해야 했는데 그 선명하고 따뜻한 빛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푸근했다. 가끔 바로 옆에서 덩치가 산만한 엘크 (큰 사슴 종류)가 풀을 뜯어먹고 있기도 했다. 어찌나 가까운 곳에서 풀을 뜯는지 허연 김을 뿜는 콧구멍 속에 주름까지 다 보일 지경이었다. 또 한가지 장점은 위치. 아주 작은 마을인 벤프에서도 왹곽에 지어진 건물이 때문에 매우 조용했다. 물론 인적도 드물었다. (이때문에 야간 외출이 어려웠다. 강도나 도둑이 아니라 야생동물들 때문이었다.) 물론 위층에서 밤이면 쿵쾅쿵쾅 파티를 열어 사람이 산다는 걸 알려줬지만 말이다.
학교로 때려친 우리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귀국하기로 해서 오래 머물겠단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덜컥 취직을 해버렸다. 아마 벤프 도착 일주일정도 후였던 것 같다. 나는 편의점에 친구는 세탁소에... 우리는 그렇게 하루 여섯 시간씩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할 일이라고는 눈구경하는거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하는 편의점에서 자주 보는 광경은 보드를 들고 고글을 끼고 들어오는 사람들이었다. 물어보니 가까운 곳에 거대한, 그리고 너무나 너무나 환상적인 스키장이 있었다. 우리 당장 모아둔 돈으로 스키장 시즌권을 끊었다. 셔틀버스까지 한방에 해결! 일 하는 시간을 오후 타임으로 돌리고 매일 오전이면 신 나게 스노보드를 탔다. 우리 집이 좋았다는 이유는 스키장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마지막으로 우리집 앞에 멈췄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도 거른 채 보드복과 보드를 챙겨 거실 창문을 통해 털레털레 집앞으로 나가면 버스가 와서 우리를태우고 스키장까지 데려다줬다. 아! 스키장까지 가는 길에 들어선 나무들과 그 그늘 아래 숨은 수만은 엘크들 그들을 낳은 하늘과 맞닿을 듯한 수많은 산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스키장 이름은 썬샤인 빌리지다. 어느 날 회사에서 신문을 보다 발견한 캐나다 선샤인 빌리지에 대한 기사. 신문 기자는 용평스키장 넓이의 54배 면적이라는 사실을밝혀냈지만 사실 그건 오보다. 지도에 나와있는 슬로프만 계산했을 때 그렇다. 캐나다 스키장은 정해진 길이 없다. 잘 닦여진 슬로프가 수십개 늘어섰지만 그보다 많은 게 슬로프 사이사이 눈이 굉장히 많이 쌓인 곳들이다. 보더나 스키어나 구분없이 이런 곳들을 달리는 것 정말 신 나는 일이다. 부상을 입거나 응급 상황일 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릴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보드를 탈 수 있는 모든 곳을 다 포함한다면 선샤인 빌리지 스키장은 용평 스키장 천배는 되고도 남는다. 곤돌라에서 먹던 주먹밥, 곤돌라에 내려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구름들이 어느새 우리 발 아래 펼쳐졌다. 수많은 로키의 봉우리들이 우리보다 낮거나 높게 끝없이 펼쳐졌다. 그 위풍 당당한 모습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풍경들이 그때 바로 내 앞에 있었다. 그게 그렇게 소중했던가는 내 앞에 없을 때 간절해진다.
그 시절 그 스키장에 나와 내 친구 두 명이 동양인의 전부였다. 우리는 미친듯이 보드를 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드를 탔다. '캐나다를 떠나기 전 이 스키장에서 안 달려본 곳이 없게 할테다’라는 각오라도 한 듯 쉬지않고 달렸다. 결국 우리는 CASI (스노우보드 강사 케나다 협회?) 자격증도 따게됐다. 지금같은 겨울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벤프의 추억이다. 특히 선샤인 빌리지에서의 라이딩은 머리와 신체 둘 다 기억하기에 특별하다.
우리는 매일 거리를 걸어다녔다. 당연하다. 차는 사치였으니까. 물론 출퇴근도 걸어서 했다 종일 눈이 내리고 치우면 또 눈이 쌓이던 그 길을 혼자서 혹은 둘이서 그렇게 다녔다. 벤프 어디에서 발길을 멈추던 북쪽을 보면 웅장한 자태로 버티고 섰던 케스케이드 산. 나는 친구를 꼬드겨 그 산을 등반했다. 물론 정해진 길이 아닌 비탈면으로 말이다. 나중에야 잦은 곰 출현으로 출입이 금지됐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땐 그 동네에 곰이 돌아다닌 다는 걸 알지 못했을 때다. 도착해서 4-5일쯤 지났을 때니까. 숨을 헐떡이며 산 중턱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던 벤프 시내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두지 못하고 가슴으로만 새겨넣었다. 곰이 나온다는 말에 두 번다시 그 산을 오르진 않았지만 언제나 벤프라는 말은 케스케이드 산을 떠올리게 한다.
케스케이드가 바라보는 주 도로, 그리고 그 옆으로 가지처럼 뻗어나간 동네길. 그 작은 도시 벤프. TV를 보다 떠올린 그 기억들이 나를 다시 웃게 만든다.
다음편을 쓸지 모르겠지만 아직 추억의 장에서 이야기로 쓰지 못한 기억들이 너무 많다.
#캐나다 벤프 여행기, 밴프, 케나다, 캐나다, 션샤인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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