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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이야기

주말, 아들과 월출산 산행. 천황봉을 오르다.

by onHappy 201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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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다. 시무룩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기분이 물에 젖은 것처럼 축 처진다. 



이를 눈치 챈 안지기께서 왜 그러냐고 묻는다. 

모른다고 답한다.

속으로 '아마 집에만 박혀있어서 그렇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주말에 집에 있는 건 체질상 안 맞는다. 



언젠가 역술인은 '역마살'이라는 이름의 질병 비슷한 개념을 내 인생의 한 귀퉁이에 메달아놨다. 

그때문인지 주말이면 피가 자꾸 집 밖으로 향한다. 



아들이 등산 가잔다. "그래?"

답답하던 차에 잘됐다. "가자"

목적지는 월출산. 아들이 골랐다. 

다음 달에 월출산 등반 계획이 있어 미리 가보고 싶단다.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오기엔 만만한 산은 아닐텐데...

 


도착하니 구름이 낮게 깔려 봉우리를 먹었다. 

출발하면서부터 마음속으로 새긴 목적지인 구름다리는 주차장에서도 보인다. 

"아들, 오늘은 저기까지 갈꺼야"



생각보다 잘 오르는 아들이다. 

다행히 비는 떨어지지 않고 해도 내리쬐지 않는다. 

등산에 아주 걸맞는 날씨인 것이다. 

'나오니 참 좋다' 난 생각했고 아들은 말했다. 



아들녀석 산 오르는 걸 구경하느라 힘든 줄 모르고 구름다리까지 한 숨에 올랐다. 이야~ 대단한데 아들!

구름다리 위에선 출렁임을 즐기는 수많은 팀들이 있었다. 

충청도, 경상도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이 위태로운 다리 위에서 스릴을 즐기셨다. 

 




"아빠 하나도 안 무서워"

사진 찍는 사이 아들이 반대편까지 건너간다. 

이녀석 제법이다.

다리에서 풍경을 감상하던 이들도 꼬마가 여까지 올라왔다고 대견해하신다. 

아들을 살짝 올려 밑을 내려보였더니 기겁을 한다. 


때론 안 보는 게 용기를 간직하게 해준다. 



인증샷을 찍고 밥을 먹는다. 

집앞에서 싸간 김밥. 

아들은 김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산에 오면 잘 먹는다. 

달리 먹을 게 없는데다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지.




바위 위에 올려두고 찍으니 팔짱을 낀 모습이 초등학생같다. 

이녀석 바람도 자주 쐬고 비도 자주 맞더니 나무처럼 쑥쑥 잘도 자란다.




밥을 먹는 사이 아들은 풍경을 그리겠단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한 말씀 하신다. 

"이야. 너 화가같다. 정말 멋진데?"






그러다 일이 생겼다. 뒤에서 마침 짐풀고 식사하던 부자 등반객의 아이가 우리 아이와 동갑인 거다. 

그런데 저녀석 정상까지 가겠단다. 

우려하던 일이다. 

우리 아들 절대 이대로 내려가진 않겠단다. 

어쩌겠는가 이것도 인생인 것을... 



상대 아버님께서도 함께 가자 권하신다. "넵"

세상에 구름다리 올라온 만큼 더 가야 정상이다.

설상가상 비까지 내려주신다.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대립한다. 

"이만하고 내려가자 날씨도 안 좋잖아."

"무슨 소리야 아이가 좋아하잖아 계속 가야해"

"아이도 힘들거야 비가 더오면 감기도 걸릴거고"

"비는 금방 그쳐 포기하는 모습은 교육에도 안 좋아"

누가 천사고 누가 악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우린 끝까지 올랐다. 



두둥. 천황봉. 

두 아빠는 아이들 걱정과 기대를 안고 언제 힘들었는지도 잊은 채 정상에 다다랐다.

 물론 아이들이 빨랐다. 






대단한 아이들. 그 나이에 벌써 이런 산을 오르다니. 

아빠와 지리산 종주를 할 날이 급격히 빨라지는 느낌이다. 

노고단에 올라 뱀사골에 연하천에 새석 평원을 거쳐~...

하하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런 다음 한라산에도 가야지.

네녀석 두 살때 올랐던 한라산 말이다. 

물론 네 다리는 아빠 등에서 허공을 밟고 올랐지만 말이다.  




함께 올랐으니 함께 사진도 찍으렴. 

산은 친구도 빠르게 만들어준다. 

올라오며 티격태격하던 아이들. 오늘을 기억할까?


좋은 인연이 닿아 계획없던 천황봉에 다다른 우리 부자는 바람폭포에서 가재도 잡고 다람쥐도 보며 내려왔다.

걱정이었던 아들의 부상은 없었고 업어달라는 투정도 없었다. 


집에 오는 차에 오르자마자 골아떨어진 아들. 어쩜 이리 귀여울까?


집에 도착하니 안지기가 홍합 파스타를 해준다. 


무려 흑산도 다물도에서 배로 30여분을 가 닿은 무인도에서 거친 파도를 맞고 자란 홍합이시다. 


무려 월출산을 등반하고 온 우리에게 격이 맞는 음식. 



그 맛 역시 꿀맛이었다. 


이탈리아에서 5일동안 내내 파스타와 피자만 먹은 적이 있다. 


파스타란 파스타는 다 먹어봤지만 이렇게 맛있는 파스타는 우리 집에서 처음 먹는다. 


이탈리아 가서 가게 하나 오픈하면 줄 서서 먹을 집에 될 맛이다. 


잘 먹었습니다. 안지기님. 


이 글을 쓰는 시간. 


안지기는 배가 아프다며 아이가 나올지도 모른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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