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간 쯤을 달린다는 느낌이 들 즈음 사라져버린 무수히 많은 시간들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보상심리 비슷한 게 작동하게 됐다.
남들만큼, 아니, 어쩌면 누구보다 더 열심히 달려왔는데 남은 건 뭐란 말인가!!!???
자산 증식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살면 그만이었다.
아이들 안 굶기고 한두해마다 가까운 해외도 한 번씩 나갈 정도였기에 중산층임을 자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노후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더니 '땅이 있어야겠구나...' '외곽에 노후에 보낼 집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한참을 땅을 보고 또 보러 다녔다.
일부러 다녔다기보단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면서 그저 풍광과 분위기를 느꼈던 과거완 다르게
저 땅이 내 땅이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하며 땅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식은 전무한 상태, 오감으로 땅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바라보니 땅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길 수년, 마음에 드는 땅이 나왔다.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임야... 보전산지. 이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다.
원래 계획은 한참을 놔두고 나중에 한참 나중에 개발을 해볼 생각이었다.
아이들 크면 와이프와 둘이 들어와서 살 집이나 한 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은 역시 계획대로 되면 재미가 없다.
나에게 4 필지 둥 하나의 땅을 판 아래부지 아저씨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난 5~6년 후에나 나무를 베고 터를 잡아볼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도로문제가 걸렸다. 우리가 가장 윗 부지이기 때문에 착공허가를 먼저 득해야 아랫집 착공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하루에 서너번씩 전화가 걸려왔다.
왜 공사 시작 안 하냐느냐고...
아랫집 집 짓는데 왜 내가 동조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개발을 해야 할 땅인데 뭐가 그리 까칠하냐고 묻는다면, 또는 그러던가 말던가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면 되잖아죠? 라고 묻는다면 딱히 답변이 생각나진 않는다.
한참 야근에 야근이 겹쳐 퇴근과 출근이 거의 만나기 직전인 상황에서 임야 개발까지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부담이 컸고 결국 퇴근과 출근이 만나버린 심신미약상황에서도 아랫집 건축 민원을 (조금 더 젊다는 이유로) 삼사일이 머다하지 않고 해결해주는 오지랖까지 발휘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무시해도 그만인 거였다. 아랫집은 수많은 이유로 건축허가를 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두개만 해결해주고 나머지는 내 능력 밖이라고 생색 정도만 내도 되는 거였다.
그런데 그 때의 나는 공무원과 법률조항을 사이에 두고 하나씩 아랫집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었다. 그 덕에 퇴근은 커녕 출근만 계속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가 멀다않고 걸려오는 아저씨 전화에 극심한 회사 업무스트레스가 겹쳐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던 것 같다.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내 땅도 덩달아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너무 긴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으니 임야에 대해 꼭 짚어야 할 키포인트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1. 흙인가? 암반인가?
2. 경사는 어떤가?
3. 토목은 얼마나 필요한가?
4. 3년 안에 건축을 완료할 수 있는가?
5. 남향이며 겨울 북풍을 막아줄 수 있는 지형인가?
1번, 내가 산 땅은 100% 천연 암반이었다. 나무들이 무성했기에, 발 아래가 흙이었기에 무시무시한 암반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암반이라면 다음과 같은 항목을 예산서에 추가해야 한다. 뿌레카 장비대, 포크레인 장비대. 얼마나 드는지는 암반의 종류와 분포에 따라 달라진다. 내 경우 땅 구입비에 해당하는 금액에 70% 가량이 토목에 들어갔다. 그 중 대부분이 앞서 언급한 포크레인 장비대다.
상황에 따라서는 깬 돌을 반출하는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 난 그런 경험이 없으니 그건 패스~
2. 경사.
우리 땅은 아직도 비포장이다. 경사도는 스키장 중급자 정도 된다. 1톤 트럭이 짐을 싣지 않으면 못 올라오는 경사다.
글 제목에 개고생이라고 쓴 이유는 경사 때문에 생기는 일들 때문이다.
기초 콘크리트를 치려면 유로폼이라는 자재가 올라와야 한다. 못 올라왔다. 소운반이다.
그 전에 기초 철근이 필요하다. 소운반이다.
그 전에 기초 배관이 되어야 한다. 소운반이다.
레미콘 차가 진입을 거부하고 억지오 올라오다 뒤로 레미콘을 쏟는다.
펌프카는 전봇대에 헤딩하고 목재를 실은 차는 합판을 뒤로 쏟아낸다.
경사가 심하면 벌어지는 일들이다.
최근까지 혼자 집을 지으면서 소운반에 동원된 날이 절반 가까이 된다.
전망을 보고 땅을 사면 경사 때문에 울게 된다.
3. 토목.
이건 1번 항목과 중복된다. 2번 항목과도 연결된다. 경사가 급하면 앞뒤로 옹벽을 세우는 데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암이 나오면 깨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토목 기간이 길어지면 민원이라를 불청객이 찾아올 확률이 높아진다.
4. 3년 안에 건축을 완료할 수 있느지?
임야는 산이다. 산은 보존해야 할 가치가 높은 곳으로 개발행위에 제한이 많다. 만약 당신이 임야를 구입해서 집을 짓겠다고 허가를 득했다면 건축보다 산지 담당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산지전용은 기한이 끝나면 원상복구가 원칙이다. 산지전용은 그 기한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
5. 남향, 북풍.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 온도가 다르다. 보통 겨울에 북풍이 불고 여름이면 남풍이 분다. 남풍은 열기를 식혀주지만 북풍은 온기를 앗아간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막아주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만끽할 수 있다면 집 짓기 좋은 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구입한 땅은 1,2,3,4번 항목에서 단점이 발생하지만 5번에서 강점을 보이는 곳이다. 그전에 살았던 전원주택(전세)가 동향이었는데 남향의 중요함을 느끼기 충분했다.
임야를 구입해 지금은 건축이 진행 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결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육아휴직이 너무 짧은 관계로 골조는 젊은 목수를 소개받아 둘이 3주 정도 진행했다. 혼자 일하는 것 보다 6~7배 정도 능률이 오른다.
지금도 그녀석 (목수 동생)이 보고 싶다. 성품도 최고, 능력도 최고다.
다음 글부턴 본격적으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현재 집은 외장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외부가 끝나면 내부를 진행할 요량이다.
(직장인이기에 시간이 많이 허락되지 않는다.)
집을 짓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 것 같다. 빨리 짓는 것, 느리게 짓는 것.
어느 게 더 낫다고 하긴 어렵다. 다만, 시간이 많다면 느리게 짓는 것도 좋겠다.
스트레스도 덜하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게 내 주장이다.
다음 글부터 집짓기가 시작 될 예정이다. .=
'목조주택, 혼자 집짓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 집짓기. 흙을 왜 퍼줘서 돈 주고 살까나? 그래도 은인이 계셨네 (0) | 2021.05.04 |
---|---|
혼자 집짓기] 석고보드, 이렇게 붙이는 건가?? (0) | 2021.05.03 |
혼자 집짓기_땅에 밀가루로 그림 그리기_레이아웃 #육아휴직 (0) | 2020.08.10 |
혼자 집짓기 _ 지붕 빗물받이 물홈통 달기_리벳_후레싱 #육아휴직 (0) | 2020.07.29 |
혼자 집짓기 _ 수직사이딩, 소핏루바 시공. 장마철이라 자재들 상태가 메롱이네! (0) | 2020.07.28 |
육아휴직 내고 혼자 집짓기 41일차_후면 세로 사이딩 상 작업. (0) | 2020.07.21 |
집, 그까이꺼 혼자 짓지 모. 혼자 집짓기의 서막. (0) | 2020.06.30 |
나, 스스로 집을 짓겠다 마음 먹었다. (0) | 2020.06.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