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등산가려 시동을 건다.
오랜만에 산이다. 그것도 무려 영남 알프스.
이름이 생소하지만 마음에 든다. 뭔가 웅장한 게 있을 듯한 느낌.
방금 거제 출장 마치고 목포왔는데 다시 울산으로 가자는 야속한 동상.
그래도 소원 들어주기로 약속했으니 어쩌겠는가? 가야지.
사전 조사 전혀 없이 홈페이지에서 등산 코스만 보고 달렸다. 밀양이네.
세벽 세시 쯤 도착한 밀양에서 겨우 김밥집 하날 발견한다.
덕유산에서 굶고 얼어서 죽을 뻔한 기억이 있어 무조건 산행 전에 배는 불려야 한다.
석골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를까 쉴까 고민한다. 새벽 네 시.....
잠깐만 눈 붙일까??
오늘 산행 코스다.
영남 알프스 종주 코스 중 가장 길다는 코스다.
13시간 정도 잡는다는데 함 해보지 뭐.
가다 배고프면 밥도 먹고
어두워지면 렌턴도 밝히고...
잠시 눈만 붙인다는 게 6시가 넘었다.
이크! 어서 올라가자.
둘이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며 걸음을 옮긴다.
오랜만에 아스팔트 길을 떠나 흙과 돌을 밟으니 몸 속에서 잠자던 감각들이 깨어난다.
2분 정도 오르니 석골사가 보인다.
"돌로 지어서 석골사인가부다"
석골사 이름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지으며 오른다.
오늘 이 석골사를 사무치게 그리워 할 운명에 처할 건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가장 오른쪽 운문산으로 오르면 되는 거군. 뭐 간단하네.
계속 두 남자의 농담 따먹기는 이어지며 경쾌한 발검음이 옮겨진다.
"산 참 좋다. 그치?"
옆에 흐르는 계곡과 완만한 경사를 즐기며 두 남자는 흡족하다.
이 환한 웃음들.
그러나 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원한 계곡물을 잠시 보여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산은 경사를 바꿔가며 피곤에 쩔은 두 사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형~ 눈 보여."
이크! 눈이다. 따뜻한 남쪽이라 눈은 생각지도 못했다.
눈 덮힌 산에서 얼어죽을 뻔한 경험이 있는 두 남자는 바짝 긴장한다.
"3월인데 아직 눈이 있네. 저 위엔 더 많겠지?"
몸은 덥혀졌는데 비가 내린다.
겉옷은 배낭에 묶어두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눈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날씨 참....
"잠시 쉬자."
두 사람 들어갈만한 천연 비가림 암벽 아래에서 잠시 쉰다.
"날씨가 영 이상하다"
"형. 여긴 비 안 온다 했어"
잠시 쉬었다고 표정이 한결 낫다.
눈은 점점 더 많아진다.
야속한 산.
그래도 아직은 발목까진 안 찬다.
다행이다. 등산화로 눈이 들어가면 고생 시작이다.
국수가락처럼 가는 비가 끝없이 내린다.
산에서 봄비 맞는 것도 괜찮다 생각한다.
오늘은 3월의 시작. 1일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내 기준에선 봄이다.
꽤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암자가 나타난다.
동생이 뭐라 알려줬는데 이름은 까먹었다.
잠시 둘러봤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대신 크게 튼 라디오만 허공에 뭐라 이야길 쏟아내고 있었다.
"야. 이산 천 미터 넘는 산이었어?"
"나도 몰랐어"
멍텅구리들이다. 자기들이 오르는 산 높이도 모르고...
얼렁뚱땅 천미터가 넘는 산 정상에 도착했다.
운문산. 영남 알프스의 제 2봉.
가자! 제 1봉으로.
우선 밥은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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