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잤다.
구조라 해수욕장을 선택한 건 잘 한 일이다.
계획없이 떠난 여행이라 야영장 예약은 포기했던 터라 이런 주차장이 만만한 선택이었다.
물론 걱정은 태산이다. 자리가 이상하면 어쩌지?
주차를 못하면 어쩌지?
쫒겨나면 어쩌지?
그런데 구조라 해수욕장에는 먼저 자리잡은 카라반이 있어 도착과 동시에 마음이 놓였고 그분이 친절하게 주차장을 이용하는 방법을 설명해주셔서 관리하는 분들과 갈등없이 편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창원에서 오신 캠퍼님.
그분 말대로 모기도 없었고 시원한 바람이 끝없이 불어와 더위 모르고 잘 수 있었다.
쨍~! 또다시 한여름의 아침이 밝았다.
밥을 먹고 바다로 나간다.
둘째 승채는 모래놀이가 적성에 더 맞나보다.
물은 발바닥을 조금 적시는 정도여야 안심하니 아직 더 커야겠다.
시간이 흐르니 사람들이 몰려든다.
해도 본격적으로 해변을 달구기 시작한다.
하악하악 뜨겁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큰녀석은 키가 많이도 자랐다.
시간은 절대적이며 상대적이다.
아이를 키우며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젊은 날 그 많던 시간들이 그립다.
별로 바쁘지도, 그럴 필요도 없던 때.
핸드폰이 없어도 살 수 있던 때.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나뭇잎 하나가 둥둥 떠내려온다.
수면 아래에선 치어들이 무리지어 다닌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는데 나뭇잎이 바다를 여행하는 이유와 치어들이 오른쪽으로 스쳐가는 이유를 난 알지 못한다.
해수욕을 마친다.
더 하자고 난리쳤을 큰아들은 이제 아쉬움을 배웠다.
다음에 또 오자.
관리실에서 물어보신다.
지금 나가지 못하면 꼼짝없이 갇혀요.
1박 더 하실거면 조금 더 앞으로 이동해주세요.
음...
고민이네. 좋은 곳이라...
그래도 다른 곳도 가봐야지.
철수한다.
다음 목적지는 바람의 언덕이다.
에효. 굉장히 막히는구나.
식구들의 불만족스런 표정에 마음이 급하다.
아들은 지루한 시간을 프라모델을 조립하며 견뎌냈다.
지난 번엔 조립 못하더니 이제 혼자 조립도 한다.
손에 든 건 건담할아버지다. 아빠도 어렸을때 조립했으니 건담은 할아버지가 되고도 남을 나이일 것이다.
드디어 도착.
3천원짜리 주차장에 얼른 차를 집어넣고 언덕을 오른다.
기대보다 괜찮았나보다.
더운 날씨에 식구들 짜증이 없다.
풍차 그늘에 기대 한참 시원한 바람을 쐬니 강아지가 둘째의 시선을 끈다.
같이 놀고싶어 따라가지만 강아지보다 돌 지난 녀석이 더 빠를 순 없다.
괜찮다. 세상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원하는 대로 꾸준히 움직이는 거다.
세 명. 복중태아까지 사진에 담겼다.
푸른 바다와 초록의 잔듸.
이곳의 콘텐츠다.
세계 공용의 매력이 자연이라는 데 이견을 달 순 없다.
야호!
신 난다.
모두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이녀석만큼은 사진따위에 신경쓰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게 있어서다.
지금. 느낌. 재미.
그게 살아있는 거지. 그치?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는 걸까?
추억?
스마트폰과 같은 간편한 디바이스의 발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
아빠! 해파리!
누구도 관심두지 않는 저 멀리 떠다니는 해파리에 생각이 빠졌다.
약 3분? 해파리에 쏠렸던 관심이 되돌아온다.
차곡차곡 생각이 쌓이고 인생이 된다.
인생? 아빠도 잘 몰라.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최고 아닐까?
카라반을 떼어뒀던 곳으로 돌아온다.
가자 우리집.
어디로 가냐고?
잘 몰라 나도.
카라반을 차에 연결하고 경치 감상을 해본다.
구조라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늘었다.
즐기세요. 우리도 즐기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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