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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흔적

벌초. 그 기나긴 풀과의 전쟁 스토리.

by onHappy 201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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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자란다. 뭐 태생이 그렇다. 끝없이 지구를 덮으려 슬금슬금 자란다. 

인간은 돈이 되는 식물에겐 이름을 붙여주고 기억하며 돈이 안 되는 식물들은 

굳이 이름이 있어도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버린다. 그 이름은 잡초다. 


잡초 입장에선 억울하다. 인간은 논에서 자라는 쌀을 주렁주렁 단 풀을 '벼'라는 이름을 주곤 대접한다. 

잡초가 곁에서 자라보려 씨앗을 키워보지만 사람들은 이런 '잡초를 봤나!'하며 뽑아버리기 일쑤다. 

돈때문에 차별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풀들이 잡초로 폄하되어 죽임을 당하는 시기는 벼가 자라나는 시기도 그렇지만 요맘때가 최고다. 

기껏 세를 불려 영토를 장악해놔도 인간들은 무시무시한 예초기를 들고 나타나 "이런, 잡초 밭이 됐네..."라며 

가차없이 예초기의 날을 돌린다. 


개와 닭들이 인간이 정해논 '복날'을 두려워하듯 풀들은 인간의 '추석'을 싫어한다. 



이른 시각 눈이 떠진다.


 바뀐 날씨 덕분에 상쾌한 느낌을 갖고 시골 장으로 향한다. 


장이 서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 가야 득템을 할 수 있다. 



오늘 득템할 아이템. 이른시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무시무시한 장비를 갖기위해 줄을 섰다. 

주인 아저씨는 한없는 여유를 부리며 이 상황을 만끽하신다.


3만 4천원. 대여료 3만 원에 기름값 4천원. 뭐 예상한 가격이다. 


순서가 오자 얼른 날쌔보이는 아이템을 택하고


차에 실어 전투가 벌어질 곳으로 향한다. 

  


오늘의 격전지. 증조할머니가 계신 곳. 풀이 무성하다. 


지체할 여유는 없다.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면 

인간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만다. 


시동을 건다. 예초기는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예상보다 훨씬 힘들다. 


풀이 우거지다보니 예초기의 날에 풀이 감겨 서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한다.

 

무거운 예초리를 등에 매고 엉킨 풀을 제거하는 일은 힘들거니와 전의를 상실케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이번 벌초는 사건의 연속이다. 날이 빠져버린 것이다. 어쩐지 헛도는 느낌이 든다했더니 역시나였어. 


사장님에게 가져갔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고쳐주고 어여 가란다.

이런 비실이 예초기를 봤나!!


"죽을뻔 했잔아요!"라고 따지려 준비했던 말이 "감사합니다."로 바뀌어 나오고만다. 

제길. 어쨌든 풀과의 전쟁을 마쳐야한다.


또다시 예초기를 등에 둘러메고 산을 오른다. 영차영차. 

 



두둥. 벌초가 끝났다. 8시에 시작한 벌초가 12시가 돼서 끝난 것이다.

 

날이 빠져 수리하러 가는 통에 시간 잡아먹고 갑자기 시동이 안 걸려 한번 더 다녀왔다. 


사장님께 기기가 이상하다고 말했더니 혹시 예초기를 뉘인적이 있냐고 물어보신다. 


뜨끔! "네." 라고 말하려다 "없는데요"라고 말해 위기를 벗어난다. 


예초기는 뉘이면 이후 시동이 안 걸린다는 상식을 잊을만큼 군 생황이 오래됐단 말인가? 


비애화 환희가 함께 다가온다. 




<새로 교체한 예초기. 터미네이터와같은 힘으로 빌빌이 예초기가 3시간 동안 해냈던 일을 불과 한 시간만에 해치웠다.>


남자들은 대부분 예초기를 다룰 줄 안다. 군대를 다녀왔다면 말이다.


 물론 요즘 군대는 모르겠다. 90년대 군대까지를 뜻한다. 


총이 낫지 예초기는 위험하다. 한 번 방심했다간 어딜 다쳐도 크게 다치게 된다. 


우선 무게가 상당해 신체조건이 우수할수록 유리하다. 


일단 날이 돌게 되면 그 반동이 상당해 지구력도 필요하다. 


30분 예초기 사용은 목, 어깨, 허리, 손목 등의 상당한 통증을 유발한다. 


때문에 최소 30분에 한 번씩은 쉬어줘야 한다. 


(이때 손을 보면 재미있다.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며 손바닥에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무겁고 강력한 살상무기를 농민에 보금한 것은 정부의 꼼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평시엔 농업용으로, 전시엔 살상용으로 쓰라는 것이겠지. 역시.... 


예초기를 다루려면 우선 복장을 갖춰야한다. 

반바지? 절대 안된다. 

반 팔? 절대 안 된다. 

슬리퍼? 죽을래?  


예초기 날이 돌아가며 수많은 풀의 사체를 날리고 풀 속에 숨어 살던 곤충들의 사체를 흩뿌리게 된다. (고충의 명복을 빕니다.)

뿐만 아니다. 풀 속 숨어있던 나무조각이나 돌맹이들을 튀어오르게 만드는데 한 번씩 맞으면 꽤나 아프다.


거기에 놀란 곤충들이 튀어나와 습격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믿을 건 옷 밖에 없다. 


가장 무서운 건 벌이다. 


이번 벌초를 진행하며 뱀과 멧돼지, 호랑이 사슴, 티라노 사우르스, 스피노 사우르스, 맘모스, 표범, 변신 괴물 등 수많은 숲속 동물과 마주쳤지만 가장 두려웠던 건 벌이었다. 


(해마다 벌초하다 벌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다.) 


벌집을 건드리면 최하가 피부과다. 좀 심하면 종합병원 입원이고 "오메 오짤꼬~"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영안실행이다. 


그나마 벌의 공격에도 조금이나마 방어가 되는 건 옷이다.

 

예초기에서 화염이 발사돼 날 지켜줬으면 싶지만 예초기는 도망가려는 내 걸음을 붙잡을 뿐이다. 


(만일 티라노 사우르스와 마주치게 되면 얼른 티라소 사우르스의 다리 사이로 들어간다. 티라노 사우르스는 먹잇감이 항문 밑에 있으면 다 먹고 똥으로 쌌다고 생각하곤 그냥 간다.)




<이곳은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묻힌 곳이다. 이곳도 바꿔 온 예초기로 깔끔하게 만들어드렸다.> 


예초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남성이라면 실전에서 사용하기 전 사용법을 충분히 숙지해야한다.

 

적절치 못한 사용은 나와 주변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 있다. 


벌초 준비물 중 중요한 것은 연료다. 


벌초할 곳이 넓고 많다면 보충 연료를 준비해가야한다. 


휘발유와 윤활유를 25:1로 섞어 사용하면 된다. 




다음 준비물은 물이다. 


예초기를 돌리는 시기가 여름과 가깝다보니 수분 증발 속도가 빠르다. 


잘못하면 벌초하다 무덤으로 갈 수 있으니 시원한 물을 충분히 준비해간다. 


또 필요한 준비물이 있으니, 과일과 접시, 소주와 잔이다. 


벌초가 끝나면 조상님께 절을 올린다.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따위의 소원은 잘 들어주지 않으신다. 


진심어린 마음을 전달하고 오자. 


소원은 산타크로스에게 비는 거다. 

 


벌초를 끝내고 하산하는 길에 마을 산길을 슬슬 정비해주며 내려오면 좋다. 


주민들도 좋아할 것이며 다음 성묘길도 편할 것이다. 


무성한 잡초들과 예상치 못한 예초기의 말썽으로 고된 성묘였지만 할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든다. 


뭐, 인간다웠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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