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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흔적

야간 런닝. 에고 더워라.

by onHappy 2014.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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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포항 호미곶으로 출장을 갔는데 동행한 선배가 달리기 광이다. "후배, 같이 뛸랑가?" 뭐 할 일도 없고 운동도 해야겠기테 달렸다. 그런데... 금새 내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숨은 가파오고 다리는 후덜거리는 데다 허리까지 아파왔다. 초반부터 '섣불리 판단해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는 후회가 머리에 꽉 찼다.

한밤중에 호미곶 주변을 무려 한 시간이나 뛴 나는 동네 등대에 누워 동네 청년이 각이 좁은 전등으로 바다를 비추며 긴 작대로 문어를 사냥하는 걸 지켜봤다. 땀은 식어갔고 올려다 본 하늘을 순결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잠든 바닷속 문어는 내 바람대로 숨죽이고 웅크려 청년의 수많은 갈고리가 달린 장대에 발이 꿰여나오지 않았다.

오늘 사무실에서 앉았는데 배가 의식됐다. 손으로 집어보니 한웅큼은 되고도 남았다. 여태 그 많은 술과 안주를 먹어도 늘씬한 몸매 덕분에 별걱정 없이 살아왔는데 체질이 바뀌면서 살이 늘고 비염이 찾아왔다. 모두가 열이 많던 몸이 냉각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점심시간 지인과 커피나 마시려고 자전거를 탔다. 허허. 뱃살도 느껴지고 허리에 등까지 출렁인다. 뼈와 스킨이 항상 붙은 상태였다 분리되어 서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니 느낌이 묘하다. 나보다 살이 많은 지인을 바라보며 옹졸한 우월감에 빠진 것도 잠시. 머리숱도 준 것 같고 피부도 더 까매진 것 같다.

저녁. 아직 식전이다. 배는 고프고 살은 많다. 학창시절 공부할 건 많고 시간은 없었는데 이제 모자란 건 없지만 너무 많아 문제인 것들이 사방에 쌓였다. 아들 사탕을 하나 깠다. 다행히 아들이 반발하지 않는다. 달리기를 나서려는데 사랑하는 각시께서 만주를 기름에 달궈 내주신다. 평소같으면 냉장고에서 추위와 맞서 도를 닦으며 정조를 지킨 맥주를 호출했을테지만 이번엔 단호히 거절한다. 아무래도 성의가 느껴져 두 개만 먹었다. 자. 달리자. '나 포항에서 한 시간도 달린 남자야~'

여름 문턱에서 밤에 부는 바람은 시원했다. 길은 한적했고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은 보폭과 상관없이 감미로웠다. 한참을 달리자 실행시켜둔 엔도몬도라는 어플에서 1KM를 왔음을 알려준다. '아니, 이렇게 힘든데 겨우 일킬로라고?' 드디어 즐비하게 술집이 늘어서 곳을 지난다. 통닭, 닭발, 순대, 족발, 소시지, 횟감, 맥주 소주 양주에 폭탄까지. 일부러 이 길을 선택한 건 맞다. ㅎㅎ 밤에도 불이 켜진 공원까지 달릴 생가으로 루트를 잡았는데 중간에 이렇게 커다란 유혹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미리 알았다. ㅎㅎ

여튼 지인들이 있을까 페이스를 늦추며 들여다본 술집엔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과감히(?) 유혹을 물리치고 한적한 공원의 작은 오솔길을 따라 달렸다. 얕은 동산을 둘러싼 길은 어두운 곳이었지만 달리기엔 그만이었다. 수많은 거미들이 쳐논 거미줄을 몸과 얼굴로 끊는 만행을 저지른 게 집에 와선 좀 미안하지만 뭐 '알고 그랬나?'

숨이 차고 몸은 열기로 지쳐갔다. 힘도 점점 빠지는 게 여태 달린 길에 기름을 다 붓고 텅텅빈 연료통을 짊어진 고물차 같았다. 에고 덥다. 비염이 온 뒤로 찬 물을 몸에 대는 게 어려웠다. 체온이 높았을 땐 그렇게 찬 물이 좋더니 그것마저 바뀐다. 그런데 조금 뛰었다고 몸이 달궈져 오랜만에 찬 물 샤워가 가능했다. 이거 꽤 상쾌하군. 조금 더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일곱살 난 아들이 자야 자유로워질 수 있기에 꽤 늦은시간 운동이긴해도 그냥 자는 것관 다르다. 얼굴과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들과 풍경이 좋다. 쿵쾅거리며 뛰는 내 심장을 느끼는 게 참 좋다. 



TistoryM에서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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