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야에 집을 짓는 걸 말리는 이유는 과도한 토목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토지가가 낮은 대신에 생각하지도 못한 비용이 많이 발생해 결국 전답 대지에 건축하는 것과 총 비용면에서 비슷해지게 된다. 물론 토목비가 적게 들어가는 조건의 임야도 있다. 토심이 깊어 토목이 용이하고 도로와 인접해 따로 진입로 공사가 필요없는 그런 임야라면 말이 달라진다.
우린 돌덩어리 땅을 구입했다. 물론 몰랐다. 토목비는 이미 천 단위가 넘었고 예상 건축비를 상회하고 있었다. 이러다 스스로 집을 짓게 되는 게 아닌지 두려웠다. (결과적으론 혼자 집을 짓고 있다.) 포크레인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축주의 준비사항에 따라 포크레인을 불러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편은 포크레인 혹사기라고 불러도 좋다. 기사님과 둘이 수많은 일을 처리한 날의 기록이 켜켜이 쌓여있는데 그 중 단면을 예로 들기 위해 2년 전 기억을 소환해본다.
포크레인 기사님을 섭외하고 공사를 진행하기 전날 모든 계획을 마무리지어놓는다.
내일 공정은 다음과 같다.
1. 도로 수도관 매립
2. 정화조 받기, 정화조 구덩이 파기, 정화조 매립하기
3. 버림 레미콘 주문하기, 버림 콘크리트 치기 (만약 레미콘이 못 올라오면 바가지로 퍼 나르기)
4. 철근 받기
5. 유로폼 현장으로 올리기
1. 도로 아래 수도관, 전기선 매립하기.
기사님과 아침에 만나 일단 도로 아래로 구멍을 판다. 다행히 이곳은 흙이 깊다. 잘 파진다. 그동안 한 달을 돌을 깨서 터를 만들었는데 이런 땅을 만나니 변비가 해소되듯 시원하다. 나는 준비해둔 PE파이프에 보온재를 씌워 깔고 기사님은 상단부 암반을 깨면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2. 정화조 설치
우리 땅은 경사가 심해 차가 잘 못 올라온다. 특히 가벼운 차량은 더 어렵다. 정화조 차량도 못 올라올 것을 대비해 갑바 (중하중을 견디는 긴 끈)를 준비해두었다. 방금 수도를 매립하고 덮어논 땅은 아무래도 무르기 때문에 1톤 화물차가 못 올라간다. 포크레인이 정화조를 끌어올려 현장으로 올렸다.
중간에 철근도 도착했다. 마찬가지 요령으로 현장까지 철근을 올렸다. 생각보다 철근이 단촐한 느낌이었지만 훗날 이 철근들을 자르고 설치하느라 하루도 안 아픈 날이 없었다.
구덩이를 파고 레미탈을 뿌렸다. 이 과정이 사진에 있어야 정화조 허가가 떨어진다. 레미탈은 대략 여섯 포 정도 들어갔다. 간단하게 참을 먹고 정화조를 놓았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가 할 일은 수평대를 들고 정화조 위로 올라가 수평을 보는 일이다. 물론 수평이 안 맞는 게 정상이다. 정화조 설치하는 방법 중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정화조가 기울면 훗날 이를 수정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포크레인이 들고 누르며 수평을 수정해가면 건축주는 구덩이에 들어가 돌과 흙을 적절히 개어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화조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피도 나고 아팠지만 하소연 할 곳이 없다. 내가 자초한 일. 더 크게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이 과정에서 구덩이를 완벽하게 메꾸진 않는다. 이유는 오후에 버림 레미콘을 주문했는데 남는 레미콘을 이곳에서 소진하기 위해서다.
3. 유로폼 올리기
차가 왔다. 굉음을 내며 가까스로 아래 터까지 올라왔다. 미리 로프로 올린다는 말을 해 둔 덕에 철사작업을 더 꼼꼼히 하셨다. 포크레인으로 현장에 번쩍 들어 올려 옮겨두었다. 파이프도 번쩍! 마법을 부렸다.
나중에 유로폼도 셀프로 설치했다. 반납하는 과정은 건축 현장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다. 차가 못 올라와 손으로 운반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도록 하자.
4. 정화조 배관자리 파기 & 마당에 전기 끌어오기
정화조 설치가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근처에 식당이 없어 점심 시간이 길다. 돌아와선 정화조 배관 자리를 판다. 이 때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너무 지쳐 수평을 대충 봤더니 배관 기울기 (구배)가 안 맞아 삽질을 천 번 이상 했다. 포크레인으론 두어번의 바가지질로 가능한 일인데 잠시의 방심으로 꽤 많은 후회를 했던 기억이다. (삽질하는 날마다 비가 와서 진흙을 퍼나르라 더 힘들었다.) 정화조 배관이 매설 될 구덩이를 다 파곤 마당으로 전기를 빼내었다. 나중에 분명 주택과 먼 마당 끝자리에서 전기를 쓸 일이 생길 것 같아 조치해두었다.
5. 버림치기
버림레미콘이 오늘의 하일라이트다. 레미콘이 올라올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입로를 파고 다시 메꾼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물렁이는 땅이 문제였다. 다행히 레미콘이 한 번에 올라왔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레미콘 기사님은 차에서 내려 "아따~ 경치 끝내주요~" 라면서 담배를 하나 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아마 몰랐을 거다. 차가 올라오지 못하면 벌이질 일에 대한 걱정이 한 순간에 꺼졌다. 구세주였다.
레미콘 기사님은 몇몇 포크레인 기사님의 이름을 꺼내며 우리 기사님과의 연을 이어보려 하셨다. 한두분 이름에서 접점이 생겼지만 우리 기사님은 '별로 안 친해요' 라는 말로 더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우리 현장의 일이 급해 빨리 일을 진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레미콘 기사님과 포크레인 기사님은 오래전부터 합을 맞춰온 사람들마냥 척척 일을 진행했다. 붓고 받고 또 부었다. 그 과정에서 대화 한 마디 없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포크레인에서 삑! 하고 경적을 울리면 레미콘차에서 레미콘이 콸콸 쏟아졌고 삑!소리와 함께 멈췄다. 바가지에 담긴 레미콘은 미리 그어 둔 선에 맞춰 일정하게 땅 위로 쏟아졌다.
2022.02.22 - [목조주택, 혼자 집짓기] - 혼자 집짓기_버림콘크리트 셀프로 쳐보기. 맨바닥에 치면 이렇게 됩니다.
레미콘 차량은 철수했다. 레미콘은 1루베를 더 시켰는데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아 딱 좋았다. 몰탈 작업은 처음인 우리 부부에게 기사님은 손수 시범을 보여주셨다. 생각보다 콘크리트는 빨리 굳었다. 기사님이 따로 전화해 묽은 놈으로 주문을 바꿔두었다고 했다. 내가 시킨 레미콘은 이렇게 높이 쌓여있지 못하고 펑퍼짐하게 흘러내릴 게 분명했기 때문에 조치를 취했다 한다. 고마운 형님이다. 나와 아내가 버림콘크리트의 면을 잡는 동안 형님은 마당의 평을 잡았다.
하루가 끝났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조금 더 송금해드렸다. 전화가 와서는 집 짓는 놈이 뭔 돈이 있다고 돈을 더 챙겨주냐고 핀잔을 주신다. 다음에 형님이 술 사면 되지요 하고 끊었다. 저무는 해를 보며 말라가는 레미콘을 자꾸 쑤셔본다. 몸도 쑤셔온다. 내일 유로폼을 세울지 말지 결심이 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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