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아이들의 방학과 코로나 시국이 결합해 나가야 하지만 나가기 두려운 시기가 와버렸다.
타인과 섞이는 게 신경쓰일수록 전국의 캠핑장은 흥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되는 캠핑장과 안 되는 캠핑장이 있나보다.
윤제림. 여름엔 예약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곳.
코로나 때문에 혹시 빈 곳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역시나 예약은 이미 만석이다.
이틀인가 잠복을 하니 '명당관'이라는 숙소가 나왔다.
3인실 정도로 보이는데 대안이 없어 일단 예약부터 하고 다른 숙소나 카라반 사이트가 뜨길 기다려봤다.
결론은 다른 취소분이 안 나와 명당관을 경험했다.
숙소에 대한 이야기는 차분히 하기로 하고
제목처럼 윤제림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와.... 정말 넓은데 정말 잘 가꿔놓으셨다.
부지 면적이 100만 평이다. 다른 곳 같았으면 득달같이 숙소를 짓고 야영장 데크를 놔도 됐을 공간이
꽃과 나무들의 안식처로 남아있다.
게다가 정상에 오르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쓰이는 초암산이 투명하고 시원한 바람을
쏟아내고 중턱에 위치한 편백숲은 우릴 젓가락 숲 속 밥알갱이 신세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큰 산이 윤제림이라는 이름으로 관리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이 거대한 산림을 일궈낸 것일지 상상도 어렵다.
난 여행이던 캠핑이던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다.
인피니티 풀장이 있는 번듯한 리조트도 10분만에 산책이 끝나면 다신 안 간다.
바람넣어 만든 어린이 풀장이라도 주변 산책코스가 다양하다면 또 가게 된다.
제주도를 좋아하는 건 숙소와 상관없이 돌아다닐 곳이 끝없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내겐 윤제림이 그렇다. 숲속의 집에 자릴 잡아도 야영 데크에 자릴 잡아도 발길 두는 데 고민이 없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던 새로운 구름과 능선이 시선을 붙잡고 나무와 꽃이 계절을 상기시킨다.
윤제림에 반해 수년 전부터 곳곳을 탐방했지만 아직 발길이 못 미친 곳들이 많다.
새로운 곳에 발길 두는 게 최고의 낙인 내게 이번 여행은 또 다른 새로움을 선사했다.
바로 모노레일이 그것이다.
모노레일은 임산물의 생산과 관리의 편의를 위해 설치하는 기구다.
임도를 뚫어 차를 통행하며 산림을 관리하고 화재시 접근해 화재를 진압하기도 하는데
차가 가기 힘든 곳은 이렇게 모노레일을 두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관리를 하게 된다.
윤제림에서 모노레일은 작업용으로도 쓰이지만 관광용으로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우리에게 깊은 산을 편하게 돌아보게 해준다.
사실 여름은 모노레일 비수기다. 온통 초록 잎사귀뿐인 산이라 특색이 없기 때문이다.
산나물이 나오는 봄이나 밤이 잔뜩 떨어지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이 좋으리라.
우리가 경험한 여름의 산도 계곡의 물소리와 더불어 그대로 아름다웠다.
여름의 윤제림은 물을 안고 있어 더 좋다.
우리 아이들은 바다건 숲이건 여름이건 물속에서 놀아야 한다.
예전엔 바다도 많이 찾았지만 요즘 바다는 그다지 매력이 없다.
습도를 품은 바람이 산의 그것과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늘 찾기도 어려운 게 바다다.
윤제림은 사방댐을 이용해 넓은 풀장을 갖추었다.
그것도 두 곳이나 개방돼 코로나 시기 갈 수 있는 수영장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훌륭한 물놀이를 제공한다.
사계를 두루 경험해봤지만 이 계곡에 물이 마르는 걸 본 적은 없다. 수온은 계곡물이라 시원한편이다.
계단으로 활용되는 주변의 돌이 따뜻하게 달궈져 입술이 파래진 아이들은 둘 위에 앉혀 체온을 올려주면
다시 물놀이 할 수 있는 원기를 회복한다.
편의시설도 잘 되어있어 와이프도 좋아한다.
샤워장 식기세척장 화장실 모두 깨끗하게 잘 관리된다.
카페도 시원하지만 그 앞 조경과 쉴 수 있는 공간이 좋다.
계곡과 카페주변에 심겨진 연초록의 나무가 궁금해 여쭤봤더니
황금느릅나무라고 하셨다. 느티나무 잎사귀와 닮았는데 전혀 다른 종이었다.
지금 짓고 있는 집의 조경수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공부를 더 해봐야겠다.
싱그러운 연초록의 잎사귀가 생명의 활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이곳은 처음 오는 길이다. 숙소가 저 위의 명당관이라 수영장에서 가까운 길로 오다보니 만나게 된 곳이다.
윤제림은 숙박시설도 다양하다. 우리 가족이 자주 이용하는 곳은 숲속의 집으로 복층구조의 아담한 집인데 아이들이 좋아한다.
캠핑도 오래 한 편이라 캠핑데크도 여기저기 사용하다 카라반으로 넘어오면서 카라반전용 사이트를 이용했다.
이번엔 이도저도 예약이 안 돼 명당관을 이용했다.
문을 열었더니 2~3인용으로 알맞은 공간이 나온다.
날씨가 이렇다보니 에어컨을 먼저 찾는다. 다행히 있다.
TV도 있다. 우리 아이들 오랜만에 TV 세상에 빠지시겠다.
명당관의 장점은 수영장이 가깝고 윤제림 중앙부분에 위치해 이곳저곳 구경다니기 편하다는 것이다.
내겐 숙소의 높은 위치 덕에 수려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숙소에 설치된 보일러는 쓸데없이 고퀄이다. 뜨거운 물이 라면을 끓일 정도다. 과장이 아니다.
보성의 산이 좋다.
내가 사는 목포 인근엔 이렇게 크고 깊은 산이 귀하다.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이 버티고 있지만 각각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등산객 말곤
일반 야영객을 품기 어렵다. 규제 때문이다.
그에 반해 보성의 윤제림은 수많은 이들을 품는다. 오랜 시간 가꾸면서 난개발을 하지 않은 덕이다.
흙이 주인이고 그 위에 풀과 나무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 덕에 사람들이 마음을 놓으려 방문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온전한 자연을 느끼는 건 쉽지않다.
또한 불편함도 적어야 한다.
눈으로 보기 좋아야 하는데 내가 불편하면 안된다.
까탈스러운 우리 세대의 욕구도 윤제림은 편하게 받아준다.
눈으론 숲을 가득 담지만 머무는 곳은 집처럼 깨끗하고 편한 곳.
그래서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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